전문가칼럼
탄소중립과 에너지 패러다임 / 배진영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교수 & 라병호 플라스틱읽어주는 배진영교수님 유튜브 채널 제작자
- 작성일2022/06/08 00:00
- 조회 840
탄소중립과 에너지 패러다임
배진영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교수) & 라병호 (플라스틱읽어주는 배진영교수님 유튜브 채널 제작자)
1차 산업혁명에서 영국에 뒤진 독일은 석탄 산업에 매진하게 된다:
석기 시대에서 출발한 인류의 역사는 청동기, 철기 시대를 지나 근세에 이르러 강도와 내구성을 더욱 높인 강철 시대를 맞이했으며,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한 1차 산업혁명은 에너지원으로서 나무를 대체한 고체 석탄이라는 하품의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외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기의 산업 혁명은 방적 기계, 증기기관과 제철 기술을 병행적으로 발전시켜서 사람들의 생활을 크게 바꾸었다. 1차 산업혁명에서 영국에 뒤진 독일은 석유는 없지만 석탄은 풍부하게 갖고 있어서 석탄을 기반으로 한 화학산업에 매진하게 되었다. 석탄을 베이스로 하는 타르, 석탄산 그리고 아세틸렌을 비롯하여 유기화학품 합성이나 천연섬유의 화학 처리로 산·알칼리 공업 또한 현저하게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독일은 석탄으로부터 합성연료로 불리우는 휘발유도 만들었다. 1925년 독일의 Franz Fischer와 Hans Tropsch는 석탄을 휘발유로 전환하는 Fischer-Tropsch(피셔-트롭쉬) 공정을 개발하였으며 이 공정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비행기와 탱크 연료를 생산하는데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근대화 화학공업의 기폭제가 된 것은 석탄을 기반으로 한 비료의 원료인 암모니아 합성과 특히 아세틸렌 화학공업이었다. 1930년대부터 석탄에서 얻어지는 아세틸렌의 후손으로서 염화비닐, 초산비닐, 스티렌, 메타크릴산메틸이 차례로 합성되어 비닐계 플라스틱이 출현하였다. 또한 아세틸렌의 렛페반응을 이용한 나일론6과 66 원료, 합성고무 원료인 부타디엔과 클로로플렌도 이 당시 합성되었다. 1930년대 미국 듀폰은 나일론 66에서 실크처럼 부드러운 실을 뽑았는데 이것은 당시 '석탄과 공기와 물로 만든 섬유'라 불렸다. ‘탄소중립’이란 용어조차 없던 시절에 하품의 화석연료인 석탄이 연료뿐 아니라 소재로서 역할도 매우 크다는 것이 인식되었고 귀한 취급을 받았다.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석유 이전의 ‘석탄 패권’의 좋은 시절이었다.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 및 소재 대전환 되다:
근·현대에 들어서서는 상품의 액체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내연기관의 발명, 가공이 쉽고 강한 강철로 기계 설비를 제작하여 공장에서 자동차와 같은 물건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는 2차 산업혁명이 발단했다. 이 시기에는 네덜란드 Shell을 필두로 영국 BP, 프랑스 Total 등 해외 석유 메이저가 탄생하였으며, 1929년 미국 자동차 등록 수는 인구 5명중 1대꼴로 휘발유로 운행되는 자동차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한편, 석유를 기반으로 한 화학공업은 석탄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다양한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 제품 혁신과 이들을 효율적, 경제적으로 양산하는 생산공정 혁신으로 다른 산업과는 비교가 안 되는 발전을 이룩하고, 우리들의 생활 수준 향상에 크게 공헌하였다. 19세기에서 1950년경까지의 석탄 중심 산업 구조부터 그 이후의 대변화는 석유를 에너지원 및 소재에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진 고도화된 공업화 구조를 실현하게 된 것이다. 자동차의 연료뿐 아니라 다양한 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석유공업을 육성하려는 방침이 각국에서 입안되어 졌고, 플라스틱, 섬유, 고무 및 각종 정밀화학제품의 원료도 석탄에서 차세대 석유로 급격히 변화하였다.
역사적으로 1-2차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나무에서 석탄으로그리고 1950년대 후에는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 주도권이 완전히 변화하였고 ‘석유 패권’의 시대가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는 에너지원과 소재의 혁신과 함께 발전하였고 세상의 중심에는 늘 화석연료가 있었다.
3차 산업혁명을 지나 4차 산업시대에도 석유는 역할이 있다:
현재 우리 주변은 온통 석유에 둘러싸여 있다. 석탄과 달리 석유는 에너지원으로서 항공, 우주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도 직결하여 플라스틱과 같은 소재 기술에도 상승효과로 놀랍게 발전을 이루었다. 1930년대의 자동차 및 라디오 산업 태동에 기여하였으며, 식품 포장의 콤팩트화와 PET 병의 보급, 그 외에 노트북·테블릿·휴대폰·스마트폰 등, 현재의 당연한 제품은 석유의 후손인 플라스틱 산업의 진화 없이는 성립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원유가격을 정치적으로 10배나 올린 1973년 10월 오일 쇼크 등의 경제위기도 극복해 가면서 석유 관련 산업은 지금까지 안정된 성장을 보이게 되었다.
실리콘 반도체 웨이퍼에 수많은 소자들을 집적시킨 소재 기술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출현시켰고, 3차 산업혁명으로 발전하여 우리를 지식정보 사회에 살게 했다. 빅데이터, 공유경제, 자율주행자동차, 사물인터넷 등의 여러 키워드로 대표되고 데이터와 정보라는 무형의 자산을 가공 활용하는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기존의 산업구조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태세다. 4차 산업혁명은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하드웨어로서 소재의 역할 또한 증대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산업과 같은 제조업의 중요성은 여전하고 산업이 진화하고 나날이 자동화됨에 따라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도 에너지와 소재는 항상 필요하며 4차 산업시대에도 에너지와 소재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석유는 배제될 수 없다. 석유는 불에 잘 타서 충분한 에너지를 내 놓지만 동시에 플라스틱과 섬유, 고무 등을 만들어내는 나프타의 조상이기에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은 아직 지구상에 없다.
탄소중립과 석유:
우리나라 지난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배경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협약 체결, 정치적 공약 등이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의 에너지 전환정책 추진과 변화 과정은 탈원전 기조 형성 및 결정, 석탄의존도 감축 및 화력발전소 폐쇄 추진, 탄소중립 목표 수립, 재생에너지 보급·확대 목표 수립 그리고 천연가스 역할 확대로 요약된다. 정부 차원의 탄소 저감 노력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자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들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고 있다. 아직까지는 시장에서 에너지 패러다임이 화석연료에서 재생 에너지 등으로 완전히 바뀌지 않았는데 정부의 ‘화석연료 사용 축소 정책’에는 매우 난감하다. 특히, 석유는 ‘탄소중립’때문에 에너지 시장에서 재생에너지, 수소경제, 풍력, 태양광 발전 등과 싸워야 하는 매우 불리한 처지가 되었다.
한국은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 버금가는 세계 5위의 생산규모를 가진 석유산업 강국이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원유 정제에서 에틸렌 등 기초 화합물을 생산하는 석유 업스트림 산업과 이를 적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다운스트림 산업이 체계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유 및 석유화학의 고도화 기술개발 및 생산의 역사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고 석유 산업이 친환경화, 고부가화에 대한 요구로 지속적으로 성장될 수 있도록 개발된 기술과 숙련된 인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투자를 더 유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세계 경제 환경의 변화와 전기자동차, 4차 산업혁명 등 산업 패러다임의 큰 변화가 닥쳐오고 있어서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 업체는 이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요즘의 탄소중립의 무게는 관련 업계에 매우 무거운 것이 현실이다. 국제사회에 동조하는 우리나라 탄소중립의 방향성은 옳지만 탄소중립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석유의 발전이 없었다면 인류의 발전도 없었다. 석유에 의한 환경 문제가 심화되고 있지만 결국 그 해결책 역시 석유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석유 주체의 정유, 석유화학 산업은 지구 환경 면에서 숙제도 많지만 우리들의 생활 구석구석까지 깊이 침투한 석유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기름값이 폭등하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석유는 에너지 안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우리는 지구의 환경을 위한 탄소중립의 속도, 석유라는 에너지 안보에 대해서 무엇을 희생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합리성과 현실성을 고려한 적절한 탄소중립의 속도로 균형 있게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석유로부터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뀌는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서는 아직 ‘석유 패권’이 유효하며, 탄소중립이 에너지 안보를 앞설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