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에너지 전환 시대를 위한 도심 주유소 규제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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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과거 두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우선, 주유소 시장에 대한 규제의 가장 큰 변화는 아마 1990년대 중후반에 있었던 자유화 조치였을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정부의 지원과 보호 아래 빠르게 성장해 온 우리나라의 석유 산업은 1990년대 소비와 정제 능력 모두 세계 10위권 내 들어갈 정도로 규모와 질적 측면에서 크게 성숙하였다. 동시에 대외 개방에 대한 압력 역시 강해지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시장의 효율적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전반적인 민영화와 자유화 조치를 단행하였다. 주유소 간 거리 제한 폐지, 석유 판매업의 등록제 변경, 유통 자유화, 가격 자유화 등 현재 국내 주유소 시장의 구조 대부분은 당시 규제 개선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규모 규제 완화가 이루어지던 당시에는 불법 석유제품의 유통이나 시장 개방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 등 다양한 우려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규제 완화는 국내 석유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현재 우리나라의 석유제품은 국제적으로 강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국들에 비해 국내 가격 역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화와 시장 개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는 적절한 규제 완화가 우리나라 석유 산업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는데 기여한 것이다.
주유소 시장에 대한 주목할 만한 두 번째 규제 변화는 2011년 이후 도입된 알뜰주유소 설립을 중심으로 한 가격경쟁 촉진 정책들이다. 당시, 국제 유가 상승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석유제품 가격상승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주유소 주간 보고 의무화, 도매가격 확대 공개, 알뜰주유소 등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게 된다. 이들 개별 정책의 유효성은 차치하더라도 국내 주유소 시장에 미친 알뜰주유소 정책의 영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출범한 알뜰주유소는 이후 2022년까지 약 3,000개소까지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전국의 주유소 수는 급격한 감소세에 접어들어, 2010년 약 13,000개소에 이르렀던 주유소가 2024년 약 10,000개소까지 줄어들었다. 더욱이, 알뜰주유소의 개소당 석유제품 평균 판매량은 2012년 약 3천 리터에서 2022년 약 6천 리터로 두 배가량 증가하였다.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인해 민간 주유소의 수익성과 투자 여건이 모두 악화되는 형국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 전환 정책 역시 국내 주유소의 수요와 수익성 감소를 가속화하시키고 있다.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정부의 정책 기조가 지속되는 한, 장기적으로 국내 주유소 시장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주유소 수 감소는 소비자 후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장 먼저 고려할 점은 주유소 감소로 인해 주유소 간 거리가 멀어지면서, 장기적으로 생존한 주유소들의 가격 독점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주유소 간 가격경쟁은 한정된 지역 내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주유소 간 거리가 멀어지거나 혹은 동일 지역 내 주유소 수가 감소하면 가격경쟁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주유소 수 감소로 인한 또 다른 문제는 소비자가 주유소까지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특히, 지대가 비싼 도심 지역에서는 소비자의 불편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나라의 주유소 감소가 도심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가 조만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2018년 대비 2024년 우리나라 전체 주유소 수는 약 7.45% 감소했지만, 서울과 부산과 같은 대도시의 주유소 수는 각각 15.94%, 18.97% 감소하며 더욱 가파른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지대가 높은 도심 지역의 주유소일수록 폐업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입지가 좋은 대로변 인근의 경우, 가격경쟁 촉진으로 석유제품 판매를 통한 수익 확보는 제한되어 있는 반면, 부동산 개발을 통한 수익 창출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실제로 최근 서울 도심에서 매각된 주유소 대부분은 높은 가격에 거래된 후 오피스텔이나 지식산업센터 등으로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폐업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주유소는 2,000억 원이 넘는 금액에 매각되어 오피스텔로 개발된 사례도 있다. 높은 지대라는 기회비용으로 도심의 주유소 감소는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주유소 시장에 대한 특별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도심 주유소의 시장 퇴출은 향후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석유제품에 대한 도시 인프라의 상실을 의미하며, 장기적으로 소비자 불편을 가중시킬 것이다.
다행히 최근 정부는 기존 주유소 네트워크를 에너지 전환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규제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정책적으로는 기존 주유소를 연료전지 및 재생에너지 등을 활용해 전기를 공급하는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가 제시되었으며, 이에 필요한 규제 개선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주유소 유휴부지에 연료전지나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하거나, 주유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한전에 판매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필요한 규제 개선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으로의 전환을 위한 규제 완화가 도심 주유소 네트워크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낮은 영업이익으로 폐업을 고민하는 주유소 운영자로서 연료전지나 태양광 발전 설비 등에 대한 추가 투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 실증 단계에 있는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의 운영을 통해서는 당장 수익을 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높은 지대로 인해 경제적 부담이 큰 도심 지역의 주유소에게는 또 다른 규제 개선 방안들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도심 지역의 주유소 네트워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유소의 좋은 입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주거, 상업, 문화시설 등과 연계한 “복합주유소” 모델은 도심 주유소의 입지를 활용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편의점뿐 아니라 카페, 패스트푸드점, 식당, 제과점, 패션 아울렛, 세탁편의점 등 다양한 상업 시설과 주유소를 결합한 복합주유소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부 주유소는 사무실 임대업을 병행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주유소 모델은 높은 지대를 감당해야 하는 도심 지역에서도 석유제품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수익성을 높일 기회를 제공한다. 주유 사업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사업 구조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주유소 네트워크 유지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심지에서의 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옥내주유소(건물 내부에 있는 주유소)의 경우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 규제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다. 먼저, 도심 옥내주유소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입점 업종에 대한 제한이다. 위험물안전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옥내주유소와 함께 운영할 수 있는 업종은 소방청장이 지정한 용도로 제한된다. 제한된 업종으로는 공동주택을 포함하여 숙박시설, 의료시설, 학원, 독서실, 고시원, 대형 소매점 등 특정소방대상물이 되는 상당수를 포함하고 있다. 이들 업종 대부분은 도심 지역에서 임대 수요가 높은 업종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업종을 모두 배제할 경우, 현실적으로 옥내주유소 개발을 위한 상업 시설의 유치는 어려워진다. 또한, 같은 법 시행규칙에서는 너비 15미터, 길이 6미터 이상의 공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요건은 도심에서 한정된 공간을 활용해야 하는 주유소의 복합 개발에 상당한 제약이 된다. 이외로도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특정 업종과 주유소 간의 복합 개발이 아예 불허되기도 하고, 재개발 시 대로변의 이용이 제한되어 복합주유소로의 전환이 더욱 어려워지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규제 중 상당수는 실제로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이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사실, 개발을 추진하는 경영자는, 주유소와 다른 업종을 함께 운영하는 경우, 지하에 저장탱크를 매립해야 하는 공간적 제약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안전 규제로 인한 추가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비용이 높다면, 굳이 주유소를 유지할 필요 없이 다른 업종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만약 도심 지역의 주유소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면, 복합주유소 개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센티브 제공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 정부는 적절한 시점에 규제 완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석유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바 있다. 이제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이한 현시점에서, 주유소 시장 또한 새로운 규제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과거에는 석유제품 시장의 경쟁력만을 고려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도심 지역 내 안정적인 에너지 인프라로서 주유소의 역할뿐만 아니라, 주거, 상업, 문화시설 등 지역 주민의 다양한 요구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소방청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할 수 있다. 도시의 다양한 환경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규제 완화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노후화된 도심 주유소들이 현대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재정비된다면, 지역의 정주 환경을 크게 개선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도심 주유소들이 단순한 석유제품 공급지의 역할을 넘어 분산 에너지의 도시 공급 거점으로 성장하는데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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