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고유가 시기의 도래, 진단과 전망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 연구위원)
중국 우한시에서 27명의 원인미상 폐렴 환자가 발병했다는 사실이 2019년 12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전해지고,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020년 3월 11일 WH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 경제를 단숨에 마비시켰고, 2020년 1월 배럴당 $64.32이던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4월 $20.39를 기록하며 3개월 동안 무려 70%가량이나 폭락했다. 유가는 팬데믹이 선언된 지 15개월 지나서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고 이후 4개월 동안 횡보하며 세계 석유시장은 안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횡보하던 유가가 21.10월 10% 넘게 급등하며 배럴당 $80을 상회했고, 유가는 2022년 시작과 동시에 연일 고공행진을 해오다 2022년 3월 9일 배럴당 $128을 기록하며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저점 대비 고점 차이가 6배 이상 벌어지는 등 유가는 이처럼 엄청난 변동성을 보였다. 본고는 최근 국제유가의 급등 원인에 대해 살펴보고, 정작 “고유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지에 대해 논의한다. 끝으로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화 가능성에 대해 전망한다.
고유가의 원인 진단 : 수급적 요인과 지정학적 요인의 복합작용
2021년 5월 국제유가는 팬데믹 이전인 $60대로 돌아왔지만, 세계 석유수요는 94.4백만b/d로 여전히 코로나19 수준을 크게 하회하고 있었다. 석유수요의 점진적 회복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면 그럭저럭 납득이 되는 수준이다. 당시만 해도 각국은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고 있었고, 세계 보건전문가들은 2021년 하반기 팬데믹 종식 가능성도 제기했다!(델타 변이가 나올지 누가 예상했겠는가?)
2021년 7월 국제유가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 $70을 향해가고 있었다. 주된 요인은 수요 회복이다. 사람들은 백신을 맞으며 차츰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했고, 하반기부터는 오히려 원유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되었다. 그러던 중, 2021년 8월 기존의 코로나19보다 감염력이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석유수요 회복을 억제하며 7~8월 동안 수요둔화 우려와 공급부족 전망이 팽팽히 맞서며 유가는 $70 수준을 횡보했다. 그러던 유가가 2021년 9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공급 차질이다. 허리케인 아이다(Ida)가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하며 미국 원유 생산에 한 달 이상 차질이 발생했고, OPEC 일부 회원국은 코로나 시기 투자 부진으로 주어진 쿼터만큼도 생산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2021년 10월부터 국제유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말 중국의 화력발전소가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며 중국 전역이 전력난에 빠졌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 전력난이 발생하자, 전력 소모가 큰 각종 원자재(요소수, 알루미늄 등) 생산이 중단되었고 이로 인해 원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나타났다. 뿐만이 아니라, 중국이 러시아 등지에서 천연가스와 석탄을 대체 수입하면서 석탄뿐만 석유, LNG 등 다른 에너지의 가격도 상승을 불러왔다. 엎친데 겹친격으로 유럽의 풍력발전량이 기후 이상으로 줄어들자 이를 대체하는 신규 천연가스 수요가 발생했고, 이 현상이 동절기 난방용 가스 수요와 맞물리며 천연가스 가격은 전례 없던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가스 대체 석유수요가 발생하며 유가도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났다(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유가가 천연가스 가격을 결정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동절기만 지나면 유가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나 역시도...).
2022년 2월 25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했다. 동절기가 지나기만을 기다리던 에너지 시장 참여자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푸틴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한 외교적 해법의 선택지를 보란 듯이 차버렸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은 러시아에 대해 전방위적인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가뜩이나 글로벌 원유시장은 타이트한 공급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러시아 산 원유 수출물량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빠졌다. 세계 원유시장은 패닉에 빠지며 유가는 단숨에 $100을 넘고, 3월 9일 $128까지 치솟았다.
고유가 시대의 도래, 그리고 향후 전망
우리는 세계 경제에 큰 혼란을 초래한 두 번의 오일쇼크(공급충격)를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다. 제1차 오일쇼크는 1973년 중동 전쟁 당시 아랍 산유국이 석유를 무기화하며 OPEC이 생산량의 25%를 감산한 것이 발단이 되었고, 당시 유가는 3배 이상 급등하였다. 제2차 오일쇼크는 1987년 이란이 혁명으로 전면적인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며 560만b/d 공급차질이 발생했고, 당시 유가는 2.5배 이상 급등했다. 참고로, 2010년 중반까지 이어진 고유가 시기는 중국 등 신흥국의 석유수요 증가에 따라 나타난 현상으로 두 차례의 공급충격과는 발원지가 다르다.
이번 러시아 사태로 인한 글로벌 원유공급 부족분은 약 467만b/d로 추산된다(IEA 2022년 2월 기준, 중국향 80만b/d, 벨라루스향 22만b/d을 제외하면 실효 물량은 약 365만b/d로 추산). 앞선 두 차례의 오일쇼크에서 경험한 공급 부족분에 비해 이번 사태에서 관찰된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으나, 이번 사태는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일부 해외 IB는 유가가 연말 배럴당 $200까지 치솟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공격을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고 부르며 서방과 러시아 간의 갈등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U도 당초 對러시아 에너지제재에는 미온적이었으나,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자행된 러시아 군의 만행을 보고 에너지 교역 제재와 세컨더리보이콧 등 현행 제재의 확대를 추진 중에 있다.
1·2차 오일쇼크발 고유가 사이클은 알래스카산 원유공급으로 해소되었다. 신흥국 수요발 고유가 사이클은 2014년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마감되었다. 이미 파국으로 치닫은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전쟁이 종식되어도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 메이저 석유업체는 ESG 경영으로 인해 투자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고, 미국 중소셰일업체들은 인력난에 빠져있다. 트럼프와 친밀함을 과시하던 사우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얼마 전 바이든의 전화는 안 받고 푸틴과는 통화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해졌다. 이란과의 핵합의 물량은 최소한 여름이 지나야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마두로를 부정부패의 악당으로 규정한 이상, 외교와 명분을 중시하는 바이든의 입장에서 이러한 악당과의 타협은 쉽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공급감소) 2014년 이후 저유가 시기가 6년간 지속되며 전 세계 석유산업이 불황 속에 지내왔고,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유가가 폭락하며 수많은 중소 셰일업체들이 완전히 도산했다. 다른 한편, 세계가 탄소중립에 열광하며 상류부문에 투자가 위축되었고 이에 따라 세계 원유공급은 자연적으로 점차 더 감소하게 될 것이다. (수요증가) 전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으로 석유수요가 곧 정점에 다다를 것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크고 편의성 좋은 SUV를 선호한다(미국의 2021년 신차판매량 1-6위는 SUV다). 또한 매년 전기차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2021년 기준 세계 100대 신차판매 중에 90대 이상은 내연기관차였다. 자동차의 교체주기와 내구연한, 그리고 전기차의 획기적인 비용 절감 달성시기, 그리고 산업용 수요 증가 등을 생각해보면, 2030년 이전에 세계 석유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과거의 1·2차 오일쇼크, 그리고 2000년 초반부터 이어진 고유가 사이클은 대략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번 러시아 사태에서 촉발된 고유가 시대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현재 공급은 제한적이고, 수요는 적어도 10년간 줄어들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고유가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경기침체로 인한 석유수요 감소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번 고유가는 우리 선택의 결과이며, 가격은 善도 惡도 아니기에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고방식으로 시장 가격을 재단하여서는 곤란하다. 수요의 증가와 공급의 감소는 필연적으로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며, 지금의 고유가는 그에 대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류는 언제나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해왔다. 사우디 아람코가 올해 계획한 자본예산 중 E&P 부문 지출을 사상 최고로 확대한다는 소식이 반갑게 들린다. 우리는 이번 고유가 시기도 결국엔 잘 극복해내겠지만, 그 과정이 가급적 짧고 너무 힘들지 않기를 소망한다.
태그
고유가|유가전망|원유공급|오일쇼크|국제유가